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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베른 침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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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과 == 현지 시각 12월 20일 0시 46분 루이나는 전격적으로 빌베른을 침공하였다. 이때 빌베른에서 루이나군 장교가 살해된것에 대한 여론의 분노가 컸으며 민주공화당과 사회민주당 모두 초당적으로 전쟁을 결정한 데다 전쟁에 대한 지지 여론이 무려 80%에 달하였다. 루이나에서는 빌베른 주둔 루이나군에 더하여 루이나 본토에서 9500명의 해병대, 육해군을 추가 동원하였다. 침공에 동원된 루이나군은 2만 7,684명, 비행기는 300기에 달했다. 이때 루이나는 빌베른이 작은 나라라고 얕보지 않고 철저하게 준비했고, F-22 스텔스 전투기, AH-64D 아파치 공격헬기 등 당대 최신 장비까지 동원하였다. 루이나군은 빌베른 공항을 공습하는 것을 시작으로 빌베른군의 주요 군사 시설을 공격하였다. 반면 당시 빌베른군은 1만 6,300명이었고 장비도 루이나군에 미치지 못했으며 심지어 이 병력도 3,000명만 군사훈련이 완료된 상태였다. 루이나군에게 속수무책으로 격파당했고 빌베른의 수도 빌베른시는 순식간에 함락되었다. 빌베른의 레이더망도 EA-18G 글울러에 재밍되어 무력화 되었다. 루이나는 이전 총선에서 승리가 확실해졌으나 헤리에타가 선거를 무효화하여 집권 기회를 놓쳤던 기예르모 엔다라를 수반으로 하는 친루이나 정권을 승인하고 기존에 발효했던 대 빌베른 경제제제를 모두 해제하였고, 경제지원 정책을 발표했다. 에뜨레아 헤리에타는 국영라디오 방송을 통하여 "우리는 지금 참호전을 수행하고 있으며 우리의 저항은 계속될 것이다."라고 발언하는 등 독전 연설을 하기도 했으나 결국 행방이 묘연해졌다. 3일간 빌베른 군은 산발적인 저항을 계속하였으나 이미 대세는 기울어졌고 헤리에타가 바티칸 대사관으로 도피하면서 전투는 루이나군의 승리로 마무리 되었다. 24일 오전, 에뜨레아 헤리에타는 빌베른 시내의 바티칸 대사관에 나타나 [[센츄리움]]으로의 망명을 요청하였다. 기예르모 엔다라 빌베른 총리는 요한 바오로 2세앞으로 서한을 보내서 헤리에타를 내놓는 것이 빌베른인의 생명을 구하는 길이며, 그와 추종자들이 저항을 계속하지 못하도록 해달라고 부탁했다. 한편으로는 교황은 비밀 서신을 통해, 교황청 대사관 직원들이 헤리에타와 그 일당에게 인질로 붙잡힌다면 이들을 구하기 위하여 필요한 모든 조치를 할 권한을 루이나군에게 부여하였다. 루이나는 외교적으로 교황청에 강력한 압력을 넣는 한편 루이나군은 교황청 대사관을 전차와 철조망으로 포위하고 대형 확성기를 설치하여 록을 시끄럽게 틀어서 대사관에 심리적 압박을 가했다. 해가 바뀌어 1월 1일 헤리에타는 밤 8시 50분에 교황청 대사관에서 걸어나왔다. 당시 목격자들은 헤리에타가 하얀 장군복 차림에 수척한 모습으로 대사관에서 걸어나와 루이나 마약 단속국(DEA)요원들에게 체포되었다. 그리고 헬리콥터를 타고 루이나군 기지로 호송되었다. 존 F. 페어팩스 루이나 대통령은 긴급 기자회견에서 헤리에타가 자발적으로 루이나에 투항하였다고 밝혔으며 C-130 수송기로 이송되어 벨포르 시에서 마약 밀매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될 것임을 밝혔다. 루이나군에 연행된 헤리에타는 루이나 벨포르 시티에서 재판을 받고 마약 거래, 마약 조직으로부터의 뇌물 수수 등의 혐의로 징역 70년의 실형 판결을 받고 루이나의 교도소에서 복역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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